[치매여행]<20> 사회적 수발시스템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
2019.01.10 오전 10:00
내가 37살이 되던 2001년에 일본으로 연수를 가게 됐다. 당시 일본의 고령화율은 18%. 우리나라의 고령화율이 7%를 겨우 넘어선 시점이었다. 한국은 2023년 가량 고령화율이 18%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갑자기 23년의 시간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모든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요양병원 가득 콧줄을 달고 의식없이 누워있는 노인환자들의 모습이 제일 기막혔다. 신문, TV등 매스컴에는 노인문제, 건강보험재정적자, 간병살인 등의 이야기로 넘쳐났다.


자연스럽게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노인문제가 내 전공이 돼 버렸다.

선배들이 물었다. "아직 마흔도 안 된 젊은애가 왜 노인문제에 관심을 가져?"

그때는 답을 몰랐는데,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모든 인간에게 정해진 길이니까. 우리 사회에도 닥칠 일이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 다리로 화장실을 못 가 기저귀를 차는 일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치매에 걸려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노망난 노인네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잘 늙어서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

물론 건강하게 백수를 누리고 아름답게 주변을 정리하고 떠나는 노인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닥칠 일이다.

걸리버여행기에는 영원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걸리버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라퓨타섬에는 태어날 때부터 이마에 붉은 점이 있는 럭낵인들이 살았다. 이들은 영원히 사는 존재였다.

걸리버에게 불사신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히 사는 것이 어떤 운명인지를 알게 된다. 이들은 '죽음'에서 소외된 불행한 존재였다.

서른 살 정도까지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만 그 이후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나날을 보낸다. 여든 살 정도가 되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며 기억력이 감퇴하고 이와 머리카락이 빠진다. '걸리버여행기'는 당시 영생과 수명연장에 집착하던 유럽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쓰여졌을 것이다.

불로장수를 꿈꾸며 전 세계 영약을 구하러 사신을 보냈던 진시황, 지금도 장수와 젊음에 집착하는 진시황의 후손들은 많다. 누구나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영민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희망과 현실은 다르다. 우리 몸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하도록 셋팅이 돼 있다.

과학과 의료의 힘을 빌어 인간은 자연이 허용한 시간을 계속 연장해 나가고 있지만 이로 인해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사회시스템도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먼 산에서 산불이 났다. 그 불은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사는 마을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불이 타다가 말 것이라고 생각하며 구경만 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매캐한 냄새가 나고 뜨거운 불길이 다가온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저 불이 언젠가는 내 집을 태우고 내 삶을 부수어놓을 것인데도 우리는 여전히 저 불이 먼 산의 불이라며 두 손 놓고 있을 뿐이다.

장수와 고령화는 우리에게 닥칠 가장 확실한 미래인데 두 손 높고 먼 산 불구경만 하는 것은 아닐까?

장수와 관련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은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어떤 마무리를 원하는지 생각해야 할 일이다.

인간에게는 존엄함이 있다. 존엄함을 지키는 일이 생애 마지막의 과업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수발하는 일이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우리 역시 삶의 마무리를 그런 식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효도’를 실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지난 해로 10년을 넘겼다. 사회보험제도가 있으니, 월 60만원으로 효도가 가능하게 됐다. 이 제도가 없었더라면 월 수 백 만 원의 요양시설을 이용하거나 가족이 죽도록 고생했을 터이다. 제도에 대한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90%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연말연시에 치매부모를 감당하지 못해 동반자살을 한 사연이 보도됐다. 아무리 제도가 잘 돼있고 사회적 돌봄시스템이 완벽하다고 해도 이런 사연은 계속될 것이다.

예전의 일본치매가족협회를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혼자서 잘 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특히 효자들일수록 사고를 많이 친다는 얘기도 들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제도도 좋지만 사람들을 기운 나게 하는 것은 이웃들의 작은 친절과 응원이다.

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해 덧붙이자면,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10년 동안 보험료는 2배가 넘게 올랐다. 2016년부터 장기요양보험제도 재정적자가 발생해 2017년에는 3천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고령화율이 고작 15%인데, 벌써 재원문제를 걱정해야 한다면, 고령화율 25~30%에 달했을 때 도대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치매국가책임제를 내걸고 전국 250여개 치매안심센터를 만든다는데. 이것까진 좋은데 건물 짓고 인테리어하느라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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