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허슬&플로우]"희주씨, 다음엔 웃으며 만나요"

[조이뉴스24 김동현 기자] 지난 19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 현지에 있는 '조이뉴스24'와 다른 매체 취재진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전날(18일)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개회식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태극전사들의 본격적인 메달 도전 일정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날 첫 번째 현장 취재를 위해 우슈가 열리는 곳을 찾았습니다. 우슈는 중국어로 '무술'을 그대로 읽은 종목입니다. 어릴 적 중국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태극권 등이 우슈에 속합니다. 해당 종목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을 연기로 표현하다는 의미를 지닌 '표연'과 겨루기인 '산타'로 나뉩니다.

사실 이 종목은 4년 전인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당시 이하성(24·경기도 우슈협회)이 금메달리스트가 됐습니다. 또한 우슈 실력 만큼이나 빛나는 외모로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진 서희주(25)가 이번 대회에 나서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길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 종목이었습니다. 우슈 경기가 열린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엑스포 B홀로 가는 발걸음도 왠지 가볍게 느껴지더군요.

그런데 악재가 터졌습니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 이하성이 우슈 남자 투로 장권 연기 도중 착지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이하성은 고난이도 연기 위주로 구성해 대회 2연패를 노리던 참이었습니다. 이 실수 후 모든 연기를 거의 완벽하게 해내면서 총점 9.31을 얻었지만 메달권 진입에는 실패했습니다.

경기 후 만난 그는 "완벽한 경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결과를 받아들이고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표정에서는 결과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취재를 한 기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하성의 다음 순서는 서희주였습니다. 서희주는 이날 열리는 검술과 21일 열리는 창술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 메달 획득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서희주가 무대에 오르기 전 마지막 담금질을 하는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경기 장소 바로 옆 트레이닝 룸에서입니다. 선수들이 이곳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몸을 풉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선수가 구성한 프로그램을 점검하는 장소입니다. 여느 선수와 마찬가지로 서희주 또한 몸을 풀었습니다.

연습을 지켜 보는 가운데 한 가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서희주는 마지막 장면 연습에 공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검술를 펼친 후 높은 점프에 다리를 찢어 착지하는 동작입니다. 우슈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고난이도 기술이었습니다.

똑같은 동작을 여러 번 되풀이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힘이 들어보였습니다. 무대 가장자리를 잘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동작 하나에도 체력 소모가 상당한 연습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이 장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동작을 반복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무대에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나갈 순서가 다가오자 서희주는 연기를 위한 복장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여전히 연습을 멈추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 연습을 위해 그는 다시 한번 무대를 가로질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연습 착지 과정에서 그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박찬대 코치는 서희주에게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무릎 쪽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는 일어나 무릎을 돌려도보고 점프도 해봅니다. 그러나 표정이 어두워보였습니다. 옆에서 보던 저까지 긴장됐지만 다행히 그는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됐고 여자 검술 선수단이 입장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서희주가 첫 번째로 무대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장 모니터에 있던 서희주의 이름이 사라집니다. 그러자 두 번째 순서였던 키아니 자흐라(이란)가 무대에 가장 먼저 올라 연기를 펼칩니다.

서희주는 기권을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부상이었습니다. 연습 장소로 돌아가 보니 서희주는 무릎에 얼음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곧 눈물을 흘렸습니다. 4년을 준비한 대회였기에 아쉬움이 더할 법도 합니다. 순서도 첫 번째였던 데다가 갑작스럽게 경기 시간이 30분 앞당겨진 것도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완벽하게 하려고 연습을 더했지만 오히려 불운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박 코치는 "선수와 코치 생활을 모두 통틀어 지금이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선수 본인은 경기에 침가하고 싶어하지만 의지만 갖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지도자 입장에서도 아쉬운 마음이 남습니다. 그는 "선수는 어떻겠느냐"면서 "위로 좀 해주세요"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취재를 하는 저 또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선수 본인은 오죽할까요. 어렵게 서희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훈련한 것도 있고 몸 상태도 좋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립니다. 눈물을 다시 왈칵 쏟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점검 차 뛰었는데 착지 때 무릎이 꺾였다"며 "자주 돌아오는 대회도 아니고 억지로 다시 뛰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정된 창술에도 참가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서희주에게 이번 대회는 이렇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우슈는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종목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하성과 서희주가 지난 2014 인천 대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회가 어떤 의미에서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부상이었습니다.

서희주는 이날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연습 도중 취재진을 향해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 미소가 더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눈물을 보게 되어 제 마음도 아픕니다. 이날의 아픔이 꼭 좋은 보상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희주씨, 다음에는 꼭 웃으면서 만나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