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여행]<13> 누구나 치매에 걸린다
2018.08.02 오후 2:59
뜨거운 여름이면 한국의 근대사를 좌지우지했던 해방 전후 격동의 세월도 함께 떠오른다. 한국이 분단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세계사적 사건 가운데 하나가 얄타회담이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는 가운데 미국, 영국, 소련이 모여 종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때 알츠하이머병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분단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있다.

치매전문 온라인매체인 디멘시아뉴스 대표인 양현덕(신경과 전문의)씨는 자신의 책 '치매이야기, 역사와 현실'에서 얄타회담이 있기 수 년 전부터 루즈벨트대통령은 고혈압을 앓고 있었고 이에 따른 혈관성 치매증상까지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대통령의 인지장애는 심각했다.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실언을 연발했으며 즉흥적이었고 횡설수설했다. 미국 대통령을 세 번이나 역임할 정도로 정치력과 상황장악력이 뛰어났던 그는 2차 대전 이후 세계의 평화와 힘의 관계를 결정짓는 얄타회담에서는 주요 안건을 상정조차 못하고 스탈린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루스벨트의 사진을 본 피부과 전문의들은 흑색종의 진단기준에 부합한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으며 흑색종이 뇌와 복부로 전이돼 인지기능을 저하시켰을 것으로 추정한다.

얄타회담이 있은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머리가 너무 아프다'라는 말을 남기고 뇌출혈로 쓰러져 2시간 만에 사망했다. 얄타회담의 또 다른 서방측 대표인 처칠 영국 수상 역시 노후에 치매로 힘들어했다.

화려한 언변, 뛰어난 정치협상력으로 영국 국민들의 영웅이었으며 격조높은 필력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처칠도 말년에는 혈관성 치매로 인해 누구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가련한 노인이 되고 말았다.

유명인 가운데 치매에 걸린 사례는 적지 않다.

국민들에게 치매에 걸렸음을 직접 발표했던 미국의 레이건대통령, 미국에서 코미디언으로 유명해진 자니 윤 등. 일본에서 인지증(치매)치료의 1인자로 불리는 하세가와씨(89)는 하세가와식 치매스케일을 만들어 낸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초기 치매 진단에서 선별검사용으로 사용되는 하세가와식 스케일은 일본내에서는 다른 진단도구 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도 지난해 자신이 치매에 걸렸음을 발표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시간관념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고, 달력을 보고 날짜를 확인하고도 납득이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집을 나섰다가도 전기나 가스가 걱정이 돼 돌아오기를 몇 번씩 반복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이상을 느꼈다고 한다.

치매에 관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가방 끈이 길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머리를 많이 쓰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치매에 관한 대부분의 오해와 마찬가지로 이 또한 절반만 진실이다.

뇌에 쌓이는 아세틸콜린플라그, 해마와 전두엽의 손상 등은 다양한 이유로 일어난다. 뇌의 노화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치매는 지적 활동과는 무관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평소 뇌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뇌의 손상되지 않은 부분을 활용해 저하된 능력을 보완하고 자신의 상태에 적응해 나갈 뿐이다.

치매는 자연적인 노화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꽁꽁 숨겨야 하는 수치로 여긴다.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명사였거나, 재계의 수장이었다가 치매에 걸린 경우, 십중 팔구, 가족에 의해 조용히 은둔상태로 모셔지게 된다.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별장에서 격리된 채 생활하게 된다. 치매에 걸렸다는 것은 '사회적 사망선고'가 돼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사회적으로 격리상태가 되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이상을 느끼는 경우에도 이를 감추고 무리한 사회활동을 계속한다.

하지만,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가 있다고 생각될 때,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권한과 지위를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판단력, 의사결정능력, 종합적 사고력 등이 전성기와 비교해 현저히 떨어졌는데도 계속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다가,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인들이 '커밍아웃'한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치매에 대한 자연스러운 수용이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레이건대통령은 자신의 질병을 알리는 대국민담화문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알림으로써 이 병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을 얻고 환자와 가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치매에 걸려서도 여전히 사람들과 만나고, 웃고 즐길 수 있다. 치매라고 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건대통령은 '아직은 괜찮다고 느끼는 지금, 나는 신이 나에게 준 이 땅에서의 나머지 인생을 지금까지 항상 해온 일들을 하면서 지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치매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또한 치매라는 질병에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관점도 있다.

사람은 노화를 거쳐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닥쳐올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런 면에서 치매에 의한 기억장애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모면할 수 있도록 마련해둔 신의 자비인지도 모른다. (치매이야기, 역사와 현실/양현덕 저)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이 기사에 질문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