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미] 국산맥주 역차별 해소 기회 놓친 정부
2018.08.01 오전 6:01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정부가 앞장서서 한국에서 맥주를 생산하지 말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습니다. 수입맥주에 유리한 주세법을 계속 유지한다면 '국산맥주'라는 말도 언젠간 사라질 겁니다."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 간의 세금 불균형을 해소하겠다고 나섰던 정부가 끝내 관련 업체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30일 발표한 내년 세법개정안에 '종량세' 전환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업체들은 이번 정부의 결정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한다. 국내 맥주산업 자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결국 산업까지 붕괴될 것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입맥주의 공세가 점차 가열되면서 국산맥주에 대한 역차별과 함께 시장에서의 입지가 줄어들면 생산 공장들이 하나 둘 해외로 이전할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가장 손해를 보는 이는 소비자다. 현행 '종가세'에서는 품질이 좋고 맛있는 술을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하게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당초 세제 개편안이 논의될 당시 '종량세'로 전환할 경우 '1만원=4캔' 구조가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소비자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에서는 영국·아일랜드·일본·프랑스 등 지역에서 수입되는 맥주의 주세는 종량세 전환 시 리터당 1천원대에서 850원 가량으로 낮아질 것으로 관측했다.


종가세는 제조원가에 세금이 연동되는 구조로, 정부가 50년 넘게 지켜온 낡은 법이다. 현재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는 곳은 OECD 회원국 35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칠레·멕시코·터키 등 4곳으로, 이미 선진국에서는 종량세를 적용한 지 오래다. 종량세는 알코올 도수나 술 부피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종량세가 적용되면 저가의 질 낮은 맥주는 퇴출당하고, 고가 맥주의 가격은 낮아지며 종류도 다양해져 소비자의 선택 폭은 넓어진다. 또 국내에서 생산된 더 맛있고 신선한 맥주를 즐길 수 있게 되는 만큼 만족도도 커질 수밖에 없다. 세금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소비자에겐 이득이다. 현재 맥주 세금은 주세(72%)와 교육세(주세의 30%), 부가세(주세+교육세+원가의 10%)를 합한 것으로, 기업과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1만원=4캔' 행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소비자 반발을 지켜보며 서민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현행 종가세 체계를 그대로 유지시켰다. 이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은 저렴한 수입맥주가 국내 시장에 더 많이 유입될 전망이다. 또 국내 업체들은 좋은 품질의 맥주 대신 세금 부담이 덜한 '발포주'를 내놓게 돼 제품의 하향평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종가세가 유지되는 한 검증되지 않은 싸구려 수입맥주는 계속 국내 시장을 잠식할 것이다. 대형마트들은 온라인 판매가 금지된 맥주를 미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만큼 수입맥주 모시기에 더 집중할 게 뻔하다.

이번 종가세 유지로 국산 맥주 역차별이 해소될 기회를 놓쳤다. 국내 중소 수제맥주업체와 주류 대기업들은 위기감 속에 하루하루를 또 버텨내야 한다. 수입맥주와의 역차별에 목 놓아 우는 업체들을 정부가 계속 외면한다면 국산맥주가 이 땅에서 사라질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장유미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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