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근로자 추천 이사제는 헌법에 위배될까
2018.07.30 오전 6:01
"자유시장경제체제 배치" vs "경제민주화 규정한 헌법 기본가치"
[아이뉴스24 한수연 기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두 달 만에 금융감독혁신 과제를 발표하면서 근로자 추천 이사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윤 원장은 금융사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차원에서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에 대한 공청회를 연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자 추천 이사제는 기업의 노동조합이 추천한 근로자 대표가 의무적으로 이사진에 들어가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근로자를 기업 경영의 한 주체로 보고 결정권을 줌으로써 근로자를 대변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독일을 비롯해 이미 19개 국가가 시행 중인 이 제도는 의사결정 거버넌스(governance)의 한 형태로,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인단 평가를 받는다. 특히 독일은 기업 규모에 따라 이사회의 최대 절반을 근로자 대표로 채울 수 있게 법제화한 상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근로자 추천 이사제가 기업의 자율성 보장 측면에서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국회 처리가 무산돼 폐기됐지만 올 초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특별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개헌 자문안 초안엔 근로자 추천 이사제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바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이던 장제원 의원은 "노동조항에서 기업의 자유를 옥죄는 근로자 추천 이사제와 비정규직 철폐가 자리 잡았다"며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헌법개정을 철저히 막아내고 저지하겠다"고 논평했다.

◆ 헌법 제119조 1항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헌법 제119조 1항과 2항이다. 먼저 근로자 추천 이사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선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1항을 그 근거로 삼는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헌법적 가치임을 명시함으로써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이 조항에 근로자 추천 이사제가 정면 배치된다는 논리다.

서울시가 처음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을 밝힌 지난 2016년 '공기업 노동이사제 도입 문제점 진단'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도 같은 맥락의 주장이 나왔다. 당시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헌법 제119조 1항에 자유시장경제체제임을 선언하고 있다"며 "근로자 추천 이사제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것이어서 입법론적으로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란 문구를 사적 소유와 시장기능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이해한다면, 이 조항은 기업의 경영상 자유를 보장한다는 개념이지 근로자가 경영권에 절대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법리가 아니란 해석도 있다.

2016년 당시 서울시도 근로자 추천 이사제가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우려에 대해 "헌법에서 보장한 자유시장 경제질서는 경영상 자유를 보장한다는 개념으로 근로자의 경영권 참여 금지를 뜻하는 법리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근로자 추천 이사제는 근로자의 책임성과 주인의식을 강화해 거버넌스, 즉 협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경제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의 기본가치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 헌법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헌법 제119조 2항).

제119조 1항 자체가 시장경제 일반에 관한 조항이기 때문에 시장경제 중에서도 사회적 시장경제에 관한 규정인 2항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근로자 추천 이사제에 대한 설득력을 높인다.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는 "헌법에 경영권은 명시적으로 보장돼있지 않다"며 "경영권은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에서 파생된 권리, 즉 재산권 행사의 한 가지 형태라고 봐야 하고 근로자 추천 이사제는 경영권 남용을 제한해 재산권이 공공복리에 맞게 행사되는 것을 보장하는 장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경제민주화 측면에서 헌법 제119조 2항은 근로자 추천 이사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현재 행전안전부 지방공기업 경영 정보공개시스템인 '클린아이'의 정책소개 코너에선 "근로자의 경영 참여는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근로자 추천 이사제를 소개한다. 이 제도가 근로자의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강화해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헌법의 기본가치에 부합된다는 논리다.

◆ 기업 경영의 투명성, 그리고 책임성

이들 헌법 조항의 면면을 살펴보면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해석은 분분할 수 있어 보인다. 법 개정을 통해 이의 명문화 하거나 공청회 등 사회적 합의가 우선 돼야 한다는 점에서 판단을 보류한다.

그러나 반대 측 주장처럼 1항에 무게를 둔다고 해도 자유시장경제체제를 국민과 근로자를 포괄한 개념으로 본다면 결국 이 조항도 근로자 추천 이사제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근거가 되기엔 한계가 있다.

금감원이 금융감독혁신 과제로 근로자 추천 이사제를 꺼내든 건 결국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경영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금융사 지배구조에 대한 경영실태 평가 시 사외이사 후보군의 다양성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동성 금감원 기획조정국 국장은 "금융감독혁신 과제는 한국 금융산업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신뢰받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이를 업무의 청사진으로 삼고 역량을 결집해 역점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내 개최될 근로자 추천 이사제 공청회에서 금감원은 이 제도의 도입 여부와 그 내용, 선임 사유 등을 자세하게 다룰 방침이다. 근로자 추천 이사제의 헌법 위배 여부를 명명백백히 따져봐야 하는 동시에 회사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측면에서 이 제도를 살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수연 기자 papyru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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