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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근] 4월의 봄볕, 평양의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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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우리가 상상하던 북한의 이미지를 설명하는 장면 하나. 예비군 훈련장 화장실 소변칸마다 살벌한 구호가 적혀 있었다. '3대 세습 타도하자, 북괴를 물리치자, 김정은의 목을 X하자' 등등.

사격장은 더 살벌했다. 표적지 위로 붙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에 총알이 박혔다. 박물관에 있어야 할 카빈 소총은 '딱콩! 딱콩!' 불을 뿜는다. 그 사수의 허리춤 수통에 선명한 'US ARMY 1950'. 그렇다. 사격장의 시간은 정확히 한국전쟁에서 한 치도 흐르지 않았다.

그때가 불과 수년 전이다. 우리가 상상하던 북한은 딱 그랬다. 무자비한 독재자. 굶주리는 인민. 얼어붙은 두만강과 겁에 질린 탈북자. 그리고 핵무기, 미사일, 잠수정, 어뢰, 천안함, 전쟁광….

올해 4월 남북평화협력 평양공연을 취재한 사진기자들의 평양 스케치 사진은 그 상상을 여지 없이 깨부쉈다. 봄볕 아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카페의 연인들, 출근길 직장인, 공원의 노인들, 뛰노는 아이들.

특히 평양 사람들의 손에 들린 핸드폰에 기자들의 시선이 꽂혔다. 비록 3G 기반이지만 그래도 스마트폰이다. 누군가는 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셀카를 찍는다. 메신저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우리와 꼭 같은 모습이다.

예비군 훈련장 밖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남북한이 다 끊긴 통신선을 부여잡고 확성기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사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창조경제의 최우선 과제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연구개발이 강조되기도 했고, 제도 개선을 위한 각종 입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접수되기도 했다.

그럼 북한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식 용어로 '새 시대 산업혁명'을 위한 '단번 도약'을 부르짖으며 지식사회 진입을 서두르고 있다. 심지어 핵무기를 버리겠다고 한다. '강성대국' '핵강국'을 뒷받침하던 엘리트 엔지니어, 과학자 집단을 향후 경제노선에 투입하겠다고 한다.

북한은 최근 동창리의 미사일 실험장 해체를 추진하고 나섰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에 다시 바람이 불고 있다. 26일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한국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은 현대아산, KT, 코레일 등 남북 경협 핵심 기업들과 간담회도 갖는다.

정보통신(ICT) 기술은 본질상 타자들을 연결한다. 국내 ICT 업계는 올해 초 남북한 순풍이 불기 전부터 이미 북한 특유의 기초과학 경쟁력과 수준 높은 인재풀에 주목했다. 한국의 자본과 경험, 북한의 인력과 기술을 연결하기 위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 중이다.

물론 남북한의 본격적인 교류협력 시대가 언제 들이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북미간 비핵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숨막힌 긴장감 속에 진행 중이다. 북한의 의도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만은 없지만, 상상 속 북한을 여전히 과거의 시간대로 가둬둔 사람도 적잖은 상황이다.

사실 압록강 왼편은 '사회주의 대국' 중국의, 두만강 이북은 세계 최강 핵국가 러시아의 영토다. 이들과의 수교는 1990년대 초반, 비록 비민주적 정권이었을지언정 노태우 정부 북방외교의 혁혁한 성과다. 한때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이 나라들은 지금 한국의 너무나도 중요한 시장이자 경제협력 파트너다.

때로는 북한의 현대화보다 우리들 인식 속의 현대화가 더 시급해보인다.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 상상 속의 북한은 지금 어느 시간대에 속하고 있는가. 여전히 과거 '고난의 행군', 굶주리는 인민들과 위험한 독재자의 모습 그대로는 아닌지.

비무장지대(DMZ) 이북으로 나름의 정치 체제와 경제구조, 사회문화를 갖춘 독립된 국가를, 아주 오랜 습관에 따라 증오의 대상으로 폄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현 정부의 대북 노선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여부를 떠나, 과연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고 있는지 말이다.

ICT의 본질은 연결이자 타자를 향한 희망이다. 모쪼록 남북한을 연결하려는 ICT 업계의 원대한 구상이 머지않아 현실화되길 기대해본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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