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 산업 경제
정치 사회 문화·생활
전국 글로벌 연예·스포츠
오피니언 포토·영상 기획&시리즈
스페셜&이벤트 포럼 리포트 아이뉴스TV

'박정희 2인자' 또는 '시대의 거목' JP 스러지다

본문 글자 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김대중·김영삼과 함께 '3김' 모두 역사 속으로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사망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는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119 구급대에 의해 이날 오전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고령에 따른 노환이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김 전 총리는 1926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했다. 공주중과 공주고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쿠데타의 주역으로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9선 의원을 지냈다.

김 전 총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JP'로 불리며 이른바 '3김 시대'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이 본격적인 민주화로 접어들던 시기부터 충청을 기반으로 정치적 거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 전 총리는 처삼촌인 박 전 대통령과 1961년 정권을 장악한 이후 같은 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하며 초대부장을 역임했다. 군사정부 시절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2인자로 군림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대일 청구권 문제와 맞물려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 사태를 촉발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1971~1975년 국무총리를 지내기도 했으나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신군부에 밀려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수감되기도 했다.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1986년 귀국,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 이후 이듬해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을 확보, 이후 확고한 '중원 세력'으로서 입지를 다진다.

김 전 총리는 1992년 역사적인 '3당 합당'과 함께 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국내 혼란이 가중될 무렵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민주화 이후 첫 정권교체에 기여했다.

이후 내각제 도입을 둘러싼 김 전 대통령과의 갈등, 16대 총선 과정에서의 충돌로 결국 2001년 'DJP연합'의 파기로 이어졌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본인의 당선 실패와 의원 4명만 당선된 저조한 성적으로 결국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다양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2인자, 또는 쿠데타의 주역에서 한국 현대 정치사의 거목, 시대의 풍운아 등 여러 평가가 존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15년 각각 사망했다. 결국 김 전 총리의 죽음으로 한국 현대사의 주역이던 3김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alert

댓글 쓰기 제목 '박정희 2인자' 또는 '시대의 거목' JP 스러지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