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NOW 모스크바]한 팀 이룬 南北 청소년, 축구로 하나된 우정
2018.06.13 오전 9:04
풋볼포프렌드십 행사…남 김찬우·북 리대건, 모스크바서 값진 경험
[조이뉴스24 김동현 기자]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이 이제 곧 열립니다. 한국시간으로 15일 자정에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막전으로 대장정의 막을 올립니다.

개막전이 열리는 모스크바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거리 곳곳에 월드컵 개막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는 것으로 월드컵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아주 뜨거운 열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흥에 겨운 각국 팬들이 거리에서 국기를 두른 채 저마다 응원전을 펼치고 있는 장면에서 월드컵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또 모스크바 최대의 관광 명소인 붉은 광장은 거리 응원을 위한 행사 준비로 완전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사실 저는 이 '본행사'를 취재온 것은 아닙니다. 월드컵 개막에 앞서 열리는 풋볼 포 프렌드십(Football 4 Friendship)이라는 행사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러시아 국영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Gazprom)이 후원하는 FIFA 공식 행사 입니다. 전세계 211개국에서 선수, 코칭스태프, 미디어를 초청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총 8명이 찾았고 일본도 7명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르완다, 통가, 버뮤다 제도 등 평소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는 나라 사람들도 이곳이라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다들 말을 걸면 상당히 친절하게 대답해줍니다.

이 행사의 의미는 간단하고도 깊습니다. '축구로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서로 친구가 되고 즐기자는 의미가 강합니다. 피부색, 국적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실제로 '침팬지' '코알라' '코뿔소' 등 어린 아이들에게 친숙한 동물 이름으로 팀을 꾸려 경기를 치렀습니다. 콜롬비아 선수가 볼을 운반하고, 카메룬 선수가 수비를 하고, 한국인 선수가 골을 넣는 장면이 이 대회에선 당연합니다. 또 이 그림이 이 행사의 취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김찬우(진건초6) 군이 이 행사를 찾았습니다. '블론드 카푸친' 그러니까 '갈색 꼬리감는원숭이' 팀에서 공격수로 뛰었습니다.

사실 진건초는 한국에선 '초명문팀'입니다. 대구FC 출신 이문선 감독이 이끄는 팀으로 남양주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 봐도 강호 중 하나입니다. 초등부 유망주의 산실인 칠십리배 2연패도 이 감독의 작품입니다.

김찬우는 이 팀의 핵심멤버입니다. 정해진 포지션은 없지만 좋은 발기술로 전국 스카우트들의 이목을 사는 유망주입니다. 확실히 신장 172㎝로 또래들보다 좋은 신체조건에 부드러운 발기술이 이곳 선수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더군요. 6대6 경기이지만 전방에서 반 박자 빠른 슈팅이나 수비를 벗겨내는 기술도 일품이었습니다. 이곳을 찾은 일본인 기자와 잉글랜드 유소년 관계자가 "한국인 선수가 뛰어난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 감독은 "찬우가 수비수로 등록됐는데 정작 와보니 공격수로 뛰고 있다"며 웃음을 짓습니다.

김찬우가 뛰어야 할 자리에 있는 수비 선수의 얼굴, 한국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북한에서 온 리대건 군입니다. 평양 국제축구학교에서 선발되어 온 선수입니다. 키가 183㎝로 이곳에서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머리 두 개는 더 얹어진 느낌입니다. 기술은 확실히 떨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사실 키나 실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남한과 북한의 두 학생이 함께 팀을 꾸렸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첫번째 경기는 아쉽게 졌습니다. 호흡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브루나이에서 온 골키퍼의 실력이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김찬우는 싱글벙글입니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니까 하기 더 쉬웠어요"라면서 웃습니다. 같은 팀에 방도 바로 옆입니다. 김찬우는 14층 18호, 리대건은 17호입니다. 김찬우는 "연습이 끝나고 모바일 축구 게임을 했다"면서 연방 웃음을 터뜨립니다.

아직은 먼 이야기이지만 둘은 "월드컵에서 만나자"면서 각오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김찬우는 "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하고 리대건은 "찬우와 함께 한 시간을 계속 생각하겠다"면서 우정을 다졌습니다. 사실 리대건이 한 살 더 많긴 합니다. 한국식으로는 친구는 아니겠지만 그라운드에 형 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확실히 한 팀에 언어가 통하는 선수가 있는 것은 편합니다. 실제로 이날 경기 도중 김찬우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많이 보였습니다. "별 말은 안했어요"라는 것이 김찬우의 말이지만 확실히 언어가 통하니 서로 패스를 주고 받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들이 속한 '꼬리감는 원숭이' 팀은 1라운드에선 졌지만 2라운드와 3라운드를 모두 대승으로 장식했습니다. 김찬우가 매경기 멀티골을 터뜨리면서 오후에 열린 결선 토너먼트에도 진출했습니다. 아쉽게 결선 토너먼트에선 탈락했습니다.

그럼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대회였습니다. 이 두 선수가 함께 뛰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실력의 차이를 운운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날만큼은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때 사회주의의 중심이었던 이 모스크바에서 이러한 장면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벅찬 느낌도 받았습니다.



마침 이 경기를 취재하는 도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평화 합의문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드라마틱하게 무언가가 바뀌진 않았습니다만 분명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첫 걸음일 것입니다.

김찬우와 리대건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팀에서 뛰었다고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김찬우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북한에 전화하면 안되죠?"라고 묻습니다.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언젠간 될 것"이라는 말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남한과 북한 그리고 전세계적인 평화 무드는 이러한 기대에 현실성을 부여합니다. 이 둘이 계속해서 성장한다면 그리고 지금과 같은 평화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정말로 서로 다른 국기가 아닌, 하나의 국기 아래에서 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류 최초로 달을 처음 밟은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달에 착륙한 뒤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첫 걸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선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한 걸음이다." 김 군과 리 군의 역사적 만남이 훗날 한반도 축구사의 한 페이지에 선명하게 새겨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모스크바(러시아)=김동현기자 migg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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