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의 백스크린]한국의 그랜트 힐은 어디에
2018.05.24 오전 9:16
돈과 인기에 취한 선수들…사회적 위치 자각하고 자중할 때
[조이뉴스24 김형태 기자] 말 그대로 충격이다. 현역 프로야구 선수들이 시즌 도중, 원정 숙소에 외부인을 끌어들이고 성폭행까지 했다는데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선수들은 '합의에 의한 관계'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시즌 도중 술을 진탕 마시고 숙소에 여성까지 불러들였다는데는 어안이 벙벙하기만 하다.

박동원과 조상우, 두 넥센 히어로즈 선수들은 야구 선수로서는 물론 향후 인생에 있어 큰 짐을 짊어지게 됐다. 진위여부에 관계 없이 원정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과 놀다가 준강간혐의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을 송두리째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선수는 먼저 자리를 떴고, 남은 선수는 합의에 의해 관계를 했을 뿐 성폭행은 없었다"는 게 구단을 통한 이들의 주장이다. 진실은 경찰 조사를 통해 추후 밝혀질 것이다. 만의 하나 성폭행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들에게 야구선수로서의 삶은 더 이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때 프로야구판을 뒤흔든 승부조작 연루 선수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들이 모를리 없다. 승부조작이 경기의 순수성에 상처를 냈다는 이유로 큰 지탄을 받은 반면 성폭행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극악무도한 범죄다. 형사사건에서도 강간은 중범죄에 해당하는 큰 사건으로 분류된다. 형법에 따르면 강간을 범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승부조작도 밝혀지는 즉시 야구판 퇴출이 결정될 만큼 큰 죄악에 해당되지만 성폭행은 사회적 인식에서 차원이 다르다. 용서가 쉽지 않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돌이켜보면 야구 선수들의 사건 사고는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달 취업비자가 나와 미국으로 복귀한 강정호(31, 피츠버그 파이리츠)만 해도 음주운전 3회에 뺑소니 사건으로 여론의 큰 지탄을 받았다. 심지어 그는 메이저리그 첫해인 지난 2015년 역시 원정 호텔방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 해당 여성이 이후 자취를 감추면서 사건은 유야무야 됐지만 피츠버그 주요 언론은 강정호의 파이리츠 구단 복귀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당시 사건을 거론한 바 있다.

한국에서 야구는 가장 큰 인기 스포츠이고, 프로야구 선수는 선망의 대상이다. 이들의 활약은 매일같이 TV를 통해 생생하게 중계되고,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상위 클래스 선수라면 천문학적인 연봉이 보장되며 저마다 벤틀리니 포르쉐니 벤츠니 하는 명차들을 보란 듯이 타고 다닌다. 인기 연예인들과 함께 유명 야구선수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군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뒤를 꿈꾸며 야구에 모든 것을 바치는 어린 선수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야구 선수들이 분에 넘치는 인기와 명성, 재력에 걸맞는 행동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무명 시절 그렇게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싶어하던 선수들이 조금만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대차게 안면을 몰수한다. 사인을 요청하는 간절한 눈빛에 비웃음으로 대응하는가 하면 대중스타로서 해줘야 할 최소한의 의무 조차도 귀찮아하기 일쑤다.

심지어 한국 생활을 오래해 '한국화' 됐다는 일부 용병은 한국 고참 선수들의 이상한 특권의식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한다. 언론의 취재요청에 아무 이유 없이 거절로 응수하고, 마음에 조금이라도 안 드는 기사는 홍보팀을 닥달해 삭제하라는 황당한 주문까지 서슴지 않는다. "한국에선 야구만 잘하면 왕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은 물론 뭘하든 덮어준다"는 잘못된 얘기가 한국행을 희망하는 일부 선수들 사이에 횡행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구단의 선수 관리 문제를 지적하기엔 이미 야구 선수들의 머리가 너무 커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웬만한 팀의 주축 선수들에게 구단 프런트가 끌려다니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겨울 한 대형 FA선수를 눈여겨보던 한 구단은 인성문제로 마지막 순간 영입을 포기한 적이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를 거두어들여 유순하게 적응시키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구단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공자님 말씀 같은 소리이지만 결국 선수들 스스로가 자중해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선수로서의 성공 하나만을 보고 달려온 과정,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올라서야만 하는 스포츠의 본질, 팀스포츠이지만 속성은 수많은 개인종목(1-1 대결)의 집합체인 야구의 특수성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특수 존재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선수들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NBA를 넘어 모든 종목을 통틀어 가장 귀감이 되는 스포츠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그랜트 힐은 과거 스타로 도약할 무렵을 회상하며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20대 초반 나는 밖에서 30대·40대처럼 행동했다. 집 안에서는 나이에 맞게 철부지처럼 뒹굴었지만 외부에선 20대 그랜트 힐이 아닌 어엿한 NBA 선수 그랜트 힐이므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그 때의 마음가짐은 선수생활 내내 나를 받쳐주는 요인이 됐다."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관련기사

[김형태의 백스크린]한국의 그랜트 힐은 어디에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