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버닝', 이창동과 유아인이 그려낸 청춘의 초상
2018.05.17 오전 6:01
이창동 감독의 메타포+청춘 이야기…17일 개봉
[조이뉴스24 유지희 기자] (본문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햇볕이 내리 쬐는 무더운 여름 낮, 종수는 무거운 짐을 메고 길을 걷는다. 구부정하게 살짝 휜 듯한 뒷모습은 노인의 그것과 닮았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표정이 없지만 다소 얼빠진 분위기가 감돈다. 행동 또한 어수룩하다. 종수를 연기한 배우 유아인의 무감각한 표정과 서툴어 보이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선택은 영화 '버닝'의 속임수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젊은이들의 이야기, '버닝'(감독 이창동, 제작 파인하우스필름, 나우필름)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분)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고, 그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분)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세상의 짐을 짊어졌지만, 해미는 그 안에서 자유를 찾았노라 말한다. 갚기 힘든 카드 빚에 매여있어도 음악에 맞춰 춤추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없다는 것을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중요한 건 진짜 하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말하며, 갈망하는 것을 팬터마임으로 충족하고는 만족해 한다. 다소 엉뚱해보인다. 그러나 이는 우물 안에 혼자 갇혀 있는 해미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처절한 방법이다.

해미의 세계는 실상과 허상 사이, 그 경계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 아프리카 어느 곳의 말처럼, 리틀헝거(little hunger)에서 좀 더 고차적원적인 그레이트헝거(great hunger)가 되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에겐 턱없이 높은 이상일 뿐이다. 바람을 즐기는 나비가 되고 싶어 우아한 날개짓을 해보지만, 이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고 현실에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피동(被動)'의 존재일 뿐이다.



영화는 서로 닮은 종수와 해미의 세계가 맞물리며 시작된다. 종수는 해미의 말을 이해하고는 실제 없을 수 있는 고양이를 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우물에 갇힌 해미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며 인격이 무시되는 아르바이트 현장을 경험하고 기댈 수 있는 가족의 울타리도 무너진 종수가 해미와 어딘가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해미와 달리 슬픈 표정을 짓지도, 울지도 않는다. 종수는 해미와 닮았지만 다르다.

감춰져 있지만 종수에게도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 욕망은 애초에 실현될 수 없다. 그는 해미와 다른 방법으로 '자위'한다. 북향에 위치한 집에서, 창문 너머 저 멀리 높이 솟아 있는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혼자 육체적 욕구를 분출하는 것. 실현되지 못하는 종수의 욕망은 웅덩이에 고인 물 같다. 분출되지 못한 욕망들은 켜켜이 쌓여 변질되기 쉽다. 종수는 누군가 불을 붙이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태울 것 같은 한계점에 서 있다.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벤의 등장은 '고여있던' 종수를 뒤흔든다. 결국 미스터리한 사건을 겪은 종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수수께끼 같은 세상"에 대한 그의 해답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택의 계기, 그가 생각하는 사건의 진실이 과연 정말 정답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그의 선택은 변질된 욕망들이 비뚤어지게 표출된 것이 아닐까. 극중 주된 사건을 마무리 짓는 종수의 선택 계기는 맥거핀에 가깝다.



'버닝'은 이창동 감독 특유의 메타포들이 넘쳐흐른다. 그 안에서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은 청춘들의 군상이 그려진다. 불안을 껴안고 있지만 누군가는 어릿광대가 되고 또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들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보이는 또 하나의 청춘도 있다. 유아인과 전종서, 스티븐 연은 표정과 행동 등 대부분 비언어적인 연기로 이를 표현해낸다. 특히 전종서의 연기는 미학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처럼, '버닝'은 여성을 그려내는 지점에서 비판 받기 쉽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군상뿐 아니라 극 중 여성의 입장을 항변하는 순간에서조차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 또한 영화에서 지금 청춘에 대한 우리 사회 통념 이상의 메시지를 찾기 어렵다.

한편 '버닝'은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영화는 17일 우리나라에서 개봉한다. 러닝타임 148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다.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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