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돋보기] 'IMT2000' 이동통신 '음성→데이터' 전환
2018.05.12 오전 6:01
한눈에 살펴보는 이동통신 연대기 ④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2세대통신(2G)이 이동통신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면, 3세대통신(3G)은 이동통신의 잠재력을 보여줬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특히 4세대통신(4G)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진화에 큰 공을 세웠다.

물론 이동통신이 세대를 건너뛸 때마다 겪는 진통이 3G 때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규제 산업 중 하나인 이동통신은 정부 정책과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3G 도입 과정도 이러한 시련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 'IMT2000' 계기로 재편된 국내 이통시장

1990년대말 글로벌 시장에서는 2G를 잇는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로 'IMT2000'을 주목했다.

IMT2000이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1985년 위킹그룹을 통해 미래육상이동통신(FPLMTS)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 부상했다.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이동통신 표준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발현됐다. 이를 위해 세계전파주관청회의(WARC)는 2GHz 주파수 대역 이하를 IMT2000 대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꾸준한 기술개발을 진행하는 동시에 전세계표준화기구들이 참여하면서 IMT2000은 대세로 자리잡게 된다.

기존 2G가 음성통신 위주였다면 IMT2000부터는 데이터 위주의 꽃봉오리가 마련된 시기다. 최대 2Mbps 속도를 낼 수 있다. 최근 마케팅 용어 표현을 빌리자면 '킬로'에서 '메가'시대에 진입하게 되는 셈이다.

IMT2000은 전세계적인 이동통신 표준을 말하는 큰 틀에서의 개념이다. 하위 계열에는 각국과 사업자, 관련 업체들이 선도하고 있는 실제 다양한 표준안들이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WCDMA와 CDMA2000, TDCDMA, UWC-135, DECT 등이 거론된다. 당시에는 치열한 경합을 벌인 표준이기는 하나 결론적으로 당시의 선택이 향후 미래 명암을 결정 짓는 중요한 때로 기억된다.

국내 역시 IMT2000 도입을 서둘렀다. 1999년 7월 당시 정보통신부는 IMT2000 사업자를 선정 작업을 본격화했다. 선정 기업은 3곳. 당시 이통사는 SK텔레콤과 한국통신프리텔(현 KT), 신세기통신, 한솔PCS,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으로 5곳이다. 사업자 선정 여부가 곧 존폐 위기로 이어지기에 날선 눈치 싸움이 계속됐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IMT2000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자연스럽게 인수합병이 진행됐다. 2G 시대부터 이동통신이 급격하게 성장하기는 했으나, 그 이면은 출혈경쟁으로 인해 각 사업자의 재정이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1998년 이통5사 매출 대비 보조금 비율은 약 65% 달할 정도였다.

결국, SK텔레콤은 1999년 12월 신세기통신을 합병, 한국통신프리텔은 한솔PCS와 합병하면서 사명을 KTF로 바꾸게 된다. 이로써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 등 3개 사업자로 국내 이통시장이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정보통신부는 IMT2000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작업을 마무리하고 2000년 10월 허가신청을 접수받았다. 당시 SK IMT와 KT아이컴이 비동기식을, 하나로통신이 동기식 사업권을 신청했다. 결과적으로 같은해 12월 비동기식 사업은 두 업체 모두 통과했으나, 하나로통신이 탈락되면서 동기식 사업자 선정이 불발로 끝났다.

동기식 사업자는 업체들의 참여의지가 없어 계속해서 지연되기는 했으나 2001년 LG텔레콤을 기반으로 한 그랜드컨소시엄이 최종 선정되면서 마무리됐다.



◆ 순탄치 않은 3세대 진입, 2.5G 고개넘기

사업자 선정은 곧 시작을 알리는 일이지만, 출발선에 섰다고 누구나 바로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SK텔레콤과 KTF가 그랬다. 두 업체는 비동기식 WCDMA를 상용화하고자 했으나 IT 시장의 악화로 어려움이 계속됐다.

이에 따라 WCDMA를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미루는 대신 기존 동기식인 CDMA 1x EV-DO를 먼저 상용화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기존 2G CDMA를 기반으로 기술 진화를 이루는 것이기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

SK텔레콤은 2000년 10월 1일 서울과 인천 지역에서 세계 최초로 CDMA2000 1x를 상용화했다. 이를 통상 2.5G로 분류하기도 한다. 데이터 전송속도는 144Kbps 속도지만 기존 CDMA 방식보다는 최대 10배 가까이 빠른 속도였다. 즉 품질이 다소 낮을지라도 컬러 영상이나 주문형 오디오(AOD), 주문형비디오(VOD) 전송까지도 가능하게 됐다.

이후 2002년 동기식 CDMA2000 1x EV-DO까지 네트워크망을 고도화시켰다. 이를 통해 데이터 속도는 최대 16배 이상 빨라졌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동영상 서비스인 '준(june)'을, KTF도 비슷한 서비스인 '핌(Fimm)'을 론칭하고 각자의 데이터 속도를 자랑했다.

2.5G의 터널을 통과한 2003년 12월 SK텔레콤과 KTF가 기존에 따놓은 비동기식 WCDMA 사업을 현실화한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WCDMA를 상용화하기에 이르렀다. 데이터속도는 최대 2Mbps에 달하게 된다.

동기식 사업권을 획득한 LG텔레콤은 SK텔레콤과 KTF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 CDMA를 업그레이드한 CDMA 2000 EV-DO 리비전(rev).A를 도입했다. 다만, WCDMA 대비 데이터 속도가 부족했기에 대항마로 자리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표준이 달라 외산 휴대폰 공급이 어려웠으며, 로밍도 힘들었다. 만년 꼴지라는 오명이 시작된 계기이기도 하다.

LG텔레콤은 결국 2006년 7월 4일 동기식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할당받은 주파수도 반납했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돼, 향후 열릴 주파수 경매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더 빨라진 데이터 속도로 인해 시장 변화도 활발했다. 멀티미디어문자메시지(MMS)가 등장하고 주문형 영상과 음악 서비스가 시작됐다. 모바일게임도 부상했다. 위치기반서비스(LBS)도 개발됐다.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통해 휴대폰에서 TV방송을 보고, e러닝을 통해 공부도 가능했다.

SK텔레콤과 KTF는 2007년 WCDMA 전국망 구축을 완료한다. 본격적인 3G 시대를 활짝 연 이통3사는 각각의 색깔에 맞는 브랜드를 론칭한다. SK텔레콤은 'T', KTF는 '쑈(SHOW)', LG텔레콤은 '오즈(OZ)'를 내세웠다. 이때 휴대폰 가입자는 4천만명에 이르게 된다.

/김문기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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