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2018 회담의 역사와 의의
2018.04.25 오전 11:42
2000·2007년 두 차례 합의 내용과 앞으로의 과제
[아이뉴스24 송오미 기자] 오는 27일 11년 만에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이번 정상회담은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된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2000·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개최됐던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와 의의를 되짚어봤다.

◇ 2000·2007 남북정상회담, 냉전에서 공존으로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 남북이 본격적으로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김영삼 정부 때였다. 그해 한반도에서는 '서울 불바다', '북폭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북 간 긴장이 최고로 고조됐었다.

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방북했고,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약속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환영의 뜻을 밝혔고, 회담은 성사되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8일 김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김대중 정부에서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두 정상은 6월14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3시간 14분 동안의 회담 끝에 '6·15 남북공동선언문' 작성에 합의했다.


주요 내용은 △자주적 통일문제 해결 △남측 연합 제안·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 공통점 인정 △이산 가족·비전향 장기수 문제 해결 △남북 경제·문화 협력 △합의사항 실천을 위한 당국 간 대화 개최 등이다.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남북공동선언문'은 남과 북이 냉전 대결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관계로 전환하는 이정표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상호 침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상대방을 위협하는 행위를 자제하기로 했다. 통일방안 마련을 위한 물꼬를 텄을 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남북 경제협력 및 사회문화 교류 등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은 노무현 정부 때 이뤄졌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10월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이 장면은 미국 방송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2차 정상회담은 10월3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총 3시간15분 동안 진행됐고, 그 결과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이 채택됐다.

주요 내용으로는 △한반도 종전선언 위한 3·4자 정상회담 추진 △북핵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이행 △서해 공동어로구역 및 평화수역 설정 △남북 국방장관 회담 개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남북 정상 간 수시 협의 △1차 남북 총리회담 개최 △이간가족 영상편지 교환 및 상시 상봉 추진 △백두산 관광 실시 및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베이징 올림픽 남북응원단 경의선 열차 이용 참가 등이다.

10·4 선언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구체적 이행 방안을 담은 합의서였다. 특히 기존에 남북 당국이 전면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군사문제와 평화체제 문제를 2007년 회담을 통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공동노력에도 합의했다.

◇ 남북정상회담은 왜 보수정부에서 중단됐나

2000·2007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는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10년 이내에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는 '비핵·개방 3000'을 발표했다.

북한은 반발했고 남북관계는 경색됐다. 이후 같은 해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이듬해 3월 천안함 사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졌다.

박근혜 정부 때도 남북 간 경색 국면은 지속됐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통일대박론'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을 내세우며 나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태도를 보였지만, 대북정책의 기조는 사실상 전임 정부와 큰 차이가 없었다.

북한은 2016년 4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박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남북 접촉 채널마저 끊겨버린 것이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지난 24일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북한에 대한 기본 기조가 진보정부는 '민족주의'이고, 보수정부는 '국가 체제 우선'이다"면서 "그러다보니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북한 간에는 궁합이 맞지 않았고 서로 간에 불신이 컸다"고 설명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도 이날 통화에서 "'남북관계가 본격적인 화해·협력 단계에 들어가려면 북핵 문제가 해결 되는 게 옳다'라는 보수정권 대북정책 원칙이 북한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서 몸담았던 유명 사립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이명박 정부 때는 김정일 위원장의 몸이 굉장히 안 좋았고, 미국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면서 남북관계가 좋아질 만한 모멘텀을 만들지 못했다"면서 "또, 천암함·연평도 사건 등도 큰 걸림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때는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선언 등 이전 정부와 다르게 남북관계에 있어서 이니셔티브를 취했다"며 "그러나 그 당시에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내부 체제 정비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북측에서 남북대화를 쉽게 응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3차 남북정상회담 성공 조건'에 대해서는 "단순한 핵동결 차원이 아닌 김정은 위원장 입에서 비핵화라는 말이 나와야 하고, 선언문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도 "공동선언문에 '비핵화'라는 세 글자가 들어가면 성공"이라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는 할 수도 있지만, '뭘 주고받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는 미국과 할 것"이라면서 "이번 회담의 성공 여부는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단초를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송오미기자 ironman1@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