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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으로 치닫는 유진그룹-소상공인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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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기업 건축자재·공구 소매시장 진출에 관련 업계 "결사 반대"

[아이뉴스24 윤선훈 기자] 건축자재·공구 소매업에 진출하려는 유진그룹의 계열사 유진기업과 이에 반대하는 산업용재 업계 간 갈등이 수개월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유진기업은 건축자재·공구·생활용품 등을 한데 모아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홈센타' 금천점 설립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산업용재 업계는 홈센타가 입점할 경우 인근에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하며 '골목상권 침해'를 결사적으로 외치는 상황이다.

한국산업용재협회와 전국 각지의 공구상인 등이 결성한 '대기업 산업용재 진출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1일 서울 여의도 유진그룹 본사 앞에서 '홈센타' 사업반대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참석한 소상공인들은 오전까지만 영업하고 오후에 일제히 가게 문을 닫고 파업에 참가하는 동맹휴업 형태로 집회를 했다.

주최측 추산 1천500여명의 인원을 비롯해 박영선·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유진기업의 홈센타 설립을 규탄하는 구호를 연달아 외쳤다. 송치영 비상대책위원장과 장호성 한국산업용재협회장은 유진기업을 규탄하는 항의서를 유진기업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한국산업용재협회 관계자는 "유진기업이 사업에 진입하게 되면 관련 업계는 사실상 다 죽기 때문에 이를 규탄하는 차원에서 총궐기대회를 하게 됐다"며 "유진기업이 영세한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장을 추진할 경우 전국의 관련 단체들과 손잡고 더욱 강력한 진출 저지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진기업은 오는 3월 금천구에 '홈센타' 1호점을 개장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갈등…합의점 없이 수 개월째 지속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들의 갈등은 지난해 9월 초부터 시작됐다. 지난 8월 말 동반성장위원회 주재로 한국산업용재협회, 한국베어링판매협회 등과 LG 계열사인 서브원 등 대기업 계열 MRO 업체들이 'MRO 구매대행업 상생협약'을 맺었는데 이 시기 한국산업용재협회 등이 유진그룹에서 산업용재 소매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이후 양측은 두 차례 관련 사안에 대해 협의하는 자리를 가졌지만 의견 차가 컸고, 결국 지난해 11월 초 산업용재협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유진기업의 산업용재 도·소매업 진출을 공개적으로 규탄했다.

이 자리에서 산업용재협회는 유진기업이 미국의 대형 건자재·공구 체인점인 '에이스 하드웨어'와 손잡고 5년 내로 전국에 100여개의 매장을 개장한다고 주장했다. 또 유진기업이 취급할 제품들이 시흥유통상가 등 인근 산업용재 업체들이 파는 제품들과 상당 부분 겹치는 데다가, 거리도 가까워 상권 침해가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유진기업 측은 5년 내 100여개 매장 개장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많아야 20개 매장을 목표로 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 취급 품목 대부분이 기존 마트에서 이미 판매 중인 데다가 시흥유통상가와는 달리 '주택보수전문 DIY 매장'을 표방한다고 반박했다. 더욱이 시흥유통상가와는 직선거리로 2.6km 떨어져 있어 애초에 사업조정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후 산업용재협회 등 관련 업계에서는 유진기업의 홈센타 설립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청와대 청원 및 국회 앞 1인 시위도 진행했다. 시흥유통상가 내 시흥공구조합은 지난해 11월 말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이후 중기중앙회가 중소벤처기업부에 검토 의견서를 제출했고, 중기부는 실태 조사에 돌입했다. 이 기간 동안 상호 간의 상생 방안을 찾기 위해 중기부 주재로 산업용재 업계와 유진기업 간 4차례의 자율조정회의도 열렸다. 그러나 합의점을 전혀 찾지 못했고 결국 이날 산업용재 업계의 규탄집회로까지 이어졌다.

자율조정을 통한 상생 합의안 마련이 늦어지자 중기부가 직접 나섰다. 중기부는 지난달 31일 유진기업 산업용재 마트에 대한 사업개시를 일시정지하라고 유진기업에 권고했다. 이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유진기업이 시흥유통단지와 자율조정을 통한 합의를 하거나, 중기부가 진행하는 중소기업 사업조정심의회의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장 개점은 연기된다. 중기부 관계자는 "매장 개점이 임박한 상황임에도 양측의 상생안이 쉽게 도출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며 "이에 일시적으로 사업정지 권고를 내렸다"고 말했다.

◆쟁점별로 갈리는 시각…중기부 "자율 합의 계속 진행할 것"

이 같은 갈등이 이어지는 이유는 세부 사안들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에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홈센타 매장·취급 물품 숫자의 규모에 대한 시각차다. 유진기업 측은 홈센타 금천점의 매장 면적이 시흥유통상가(8만700㎡)의 2.2%인 1천795㎡에 불과하다고 강조하고, 추후 개장할 매장들도 330~900㎡ 사이로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총 판매 품목 수는 인테리어성 자재·건축용 자재·생활용품·청소용품 등을 포함한 2만2천여개로 60만~100만개 물품을 취급하는 시흥유통상가의 2%밖에 되지 않고, 특히 산업용 기계장비 및 전문용 페인트 등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유진기업 관계자는 "홈센타 금천점의 예상 매출은 시흥유통상가의 1% 내외에 불과하다"며 "금천점과 시흥유통상가 간 거리도 직선거리로 2.6km에 이르는 만큼, 우려와는 달리 집객효과를 통해 인근 상권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유사한 사례인 홈씨씨(KCC가 운영하는 건축·인테리어 자재 전문매장) 인천점의 경우 근처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에 매출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시흥유통상가 등 산업용재 업계에서는 유진기업이 전국에 매장을 개장할 경우 결국 소상공인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산업용재협회는 자체 조사를 통해 유진기업이 5년 내 전국 100개의 매장을 세워 매장당 30명의 직원을 고용할 경우, 최소 16%(3만9천명)에 달하는 산업용재분야 종사자가 실업자가 된다고 추산했다. 장기적으로는 홈센타가 지역상권을 잠식해 결국 지역 곳곳의 산업용재 소상공인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는 취급하는 물품이 적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상윤 한국산업용재협회 기획실장은 "유진기업 측에서는 시흥에서 취급하는 공구가 100만가지이며 자기들이 취급하는 것은 그 중 2만가지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홈센타 취급 물품 중 95% 이상이 인근 소상공인들이 판매하는 물품들과 겹치고 이 중 상당수가 판매량이 많은 알짜 물품들"이라며 "유진기업 쪽에서는 서로 간 주요 고객이 다르다고 하는데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양측은 상생 방안에 대해서도 커다란 온도차를 나타내고 있다. 유진기업은 홈센타 상품을 인근 도매업자들로부터 조달받고, 지역 상공인들을 추천인사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하는 등 주변 상인들과의 상생안 도출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유진기업 관계자는 "각종 상생협력 방안들을 제시했지만 상대편에서 협상의 여지를 거의 주지 않고 있다"며 "타협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은 채 사업 계획의 철회만을 요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산업용재 업계는 유진기업이 제시한 상생협약이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반박한다. 김 실장은 "시흥공구상가 내 업체 중 95% 이상이 소매상들이고 도매상들은 5%도 채 안 되는데, 소매상들의 물품을 공급하는 도매상에서 물건을 받아서 홈센타에서 파는 것은 상생이 아니라 오히려 소매상들을 죽이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김 실장은 "지역 상공인들의 추천 인사채용 역시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현재 있는 사람들까지 빼 가겠다는 것"이라며 "유진기업에서 실질적인 상생안을 제시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각 사안별로 차이가 크다 보니 수개월째 갈등이 전혀 좁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단 중기부는 여전히 자율 합의를 우선으로 하고, 양측이 상생안 도출에 계속 진통을 겪을 경우 중기부 차원에서 사업조정 심의위원회를 열어 최종 권고안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업조정 신청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고, 이와 함께 자율조정회의를 진행해 기업 측의 업무 침해 최소화에도 주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양측 간 자율조정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선훈기자 kre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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