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습기 살균제 천식 피해 인정 '찔끔'…겨우 0.3%
2018.01.25 오후 5:44
사각지대 갇힌 피해자 '수두룩'…"피해조사 방법 바꿔야"
[아이뉴스24 윤지혜기자]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2천14명중 단 0.3%만 천식피해자로 인정한 것에 대해 피해조사 및 재심신청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해 폐섬유화와 태아피해에 이어 천식을 3번째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질환으로 인정하고 2017년 8월 10일까지 폐질환 조사·판정이 완료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청자 2천14명 중 6명을 천식 피해자로 인정했다.

정부는 조사대상 중 1천204명은 천식 피해 미인정 판정을 내렸으며 남은 804명은 의무기록을 추가검토해 피해인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미인정자 중 1천196명은 천식진단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피해 인정비율이 낮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고라도 천식 피해 인정 비율은 0.73%에 불과하다.

피해자들 사이에선 실망한 기력이 역력하다. 천식 피해 인정으로 정부 지원을 받는 피해자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법적 사각지대에 남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10년 넘게 중증 천식을 앓은 환자도 포함돼 피해자들 사이에서 "대체 기준이 뭐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기간이나 사용 후 2년 내 신규 천식 진단을 받아 2년 이상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은 사람 중 적어도 3개월 이상의 투약이 확인되는 경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천식 피해를 인정하고 있다. 이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천식 진단코드와 약제코드를 바탕으로 중증천식에 해당하는 투약을 받으면 천식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


천식 진단은 ▲건강보험자료 ▲과거의무기록 ▲현재 상태에 대한 의사검진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다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02년 이전 자료는 가지고 있지 않아 그 전에 천식 진단을 받은 사람은 신규 천식 판정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 환경부는 신청자의 과거의무기록을 통해 피해를 판정한다.

문제는 의무기록지를 가진 중증 천식 환자도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한 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은 2002년 이전 천식 환자의 경우 의무기록지마저 개별 보관하지 않았다면 피해를 인정받을 길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병·의원은 진료기록부를 최대 10년까지만 보관하는 탓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15조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진료기록부를 최대 10년까지만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다. 처방전 보존기간은 2년 환자명부와 검사내용 및 검사소견기록은 5년에 불과하다. 즉,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자료가 없는 2002년 이전 천식 환자는 사실상 의무기록지를 재발급 받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더욱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1994년부터 이어져 문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다수의 피해자가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강은 천식피해자모임 대표는 "1998~2000년까지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사용한 후 18년간 중증 천식을 앓았다"며 "2년 전까지 산소발생기를 달았고 현재도 조금만 빨리 걸으면 숨이 차는데 정부의 천식 피해 판정은 받지 못했다. 다행히 저는 의무기록지를 보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피해자들은 아파도 아픈 것을 증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2002년 이후에 질환을 앓은 환자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천식은 감기와 비슷한 만큼 병원이 진단·약제코드를 잘못 입력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1년 외래 경증질환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가 시행되면서 종종 환자의 비용부담을 낮추기 위해 진단코드를 천식 대신 만성기침이나 기관지염 등으로 입력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환경부가 천식 진단을 단 한번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한 1천196명 중에서도 또 다른 피해자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고자의 20~30%는 천식 피해자로 추정된다. 이 기준대로라면 정부 조사 대상(2천14명) 중 적어도 400~500명은 천식 피해자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가 까다로운 천식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정말 피해 인정을 해주려고 만든 기준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어 "판매자는 판매기록을 5년만, 병원은 진료기록을 5~10년만 보존한다면 그 전에 아팠던 환자는 병원 기록조차 확보할 수 없게 된다"며 "특별법(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병원이 1994년부터 보유 중인 기록을 모두 제출하도록 의무조항을 넣으면 되는데 정부가 고민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지적에 환경부 관계자는 "기록이 전혀 없는 피해자들은 피해 인정을 해드리고 싶어도 그 근거가 없어 정부도 갑갑한 상황"이라며 "더욱이 병원은 의료법에 따라 진료기록을 보존하기 때문에 환경부가 나서서 보관을 강제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병원마다 진료기록 보존기한이 달라 10년 전 기록을 보관 중이 병원도 있는 만큼, 이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며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통해 진료기록 신청을 받거나 환경부가 직접 병원을 찾아가 진료기록을 떼 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17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 수는 모두 5천955명, 사망은 1천292명(22%)에 달한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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