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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37', 무너지지 않는 싸움을 위하여(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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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식 감독, 한국 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되짚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영화 '로마서 8:37'이 한국 교회에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고 아프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 잘못된 믿음의 방향을 묵과해 온 목회자들의 진짜 역할은 무엇인지, 교회는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지, 수면 아래 잠겨 있던 문제들을 파헤친다. 원죄의 개념은 이 치열한 비판의 단단한 도구가 된다.

'로마서 8:37'(감독 신연식, 제작 루스이소니도스)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은 '좋은 배우' '러시안소설' '조류인간' 등 문학적 서사가 돋보인 작품들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선보였던 인물이다. 영화 '동주'의 제작과 각본을 맡으며 영화계와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기도 한 멀티플레이어 영화인이다.

3대째 기독교 신앙을 지켜 온 집안에서 성장했고, 감독 자신도 독실하다. 그런 그에게 '로마서 8:37'은 언젠가 꼭 만들어야만 했던 작품이었다. 평신도로서 교회를 바라보며 오랜 시간 고민했던,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이 침묵해 온 한국 교회의 문제들을 실제 사건들을 가공한 서사 안에 신중하게 녹여냈다.

영화는 전도사 기섭(이현호 분)이 자신의 우상인 형 요섭(서동갑 분)을 둘러싼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며 시작된다. 기섭은 자신을 향한 여성 신도들의 추앙을 이용해 그들을 성적으로 괴롭혀 온 기섭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하고, 이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원죄를 돌아본다.

감독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서 이미 "건전하지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 개인과 교회의 관계를 되짚는다. '로마서 8:37'이 다루는 교회의 위선과 우상의 문제가 "일부 목회자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감독의 이야기다.

이하 신연식 감독과 일문일답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그간 교회가 은폐해 온 문제들이다. 이에 대해 오랜 고민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교회 내에선 일반 신자들로 하여금 그런 내용들을 알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한국 교회와 한국사회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전체주의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게 됐고 개인의 성찰이나 성장은 터부시해왔다.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가치를 부여받지 않았나. 국가의 위정자들이 국민을 계도 대상으로만 보는 것처럼, 교회 내에선 성도를 양육의 대상, 목양의 대상으로 본다

우리 10~20대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을 다니느라 오히려 공부할 시간이 없듯이 교회에서는 정말로 기독교 정신인 철학, 기독교적 가치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너무 많은 성경 공부를 하고 잡다한 부수 업무가 있다. 본질과 부수적인 것이 굉장히 뒤바뀌어 있는 셈이다. 왜 하는지 모를 사업들까지 벌여놓고, 그것을 하느라 세월을 보낸다. 우리 인생이 공동체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태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내가 왜, 무엇 때문에 탈진해있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하지만 그 질문은 어디에도 물을 수 없는 질문이 된다. 불에 탄 삶이나 재가 된 사람만 남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기독교적 가치와 복음이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간다. 개개인이 공동체 밖에서도 올바르고 건강하게 홀로 서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못 하게 만드는 거다. 그것이 바로 우민화라고 생각한다. 교화와 개인이 건강한 관계가 아니게 된다."

-'로마서 8:37'이 다루는 문제들을 개인의 일탈로 보지 않아야 할 이유로 들린다.

"이미 '나'와 '교회'의 관계는 건전하지 못하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일들은 일부 목회자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교회와 관련해) 여러 성 관련 이슈들이 터지는데, 패턴이 똑같다. 일단 공동체 내에서 입을 다물게 한다. 개인의 가치가 아니라 공동체적 가치만 좇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왜 그렇게 됐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가 건전해지기 위해서도 비슷한 고민이 필요하다. 성도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성도들이 신앙관을 목사에게 의지하지 않아야만 교회도 목사도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런데 교회와 목회자들은 끊임없이 여러 프로그램으로 신도들을 그들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그게 한국 교회의 문제라 본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하나님의 권세와 뜻이 우리 목사, 교회를 통해 임하라'는 기도를 한다. 그 어떤 교회나 목사, 장로도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기 위해 나는 죽어 없어져서도 좋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상인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교회 조직이 일상과 가까운 미국사회와 비교했을 때 ,한국사회가 가진 어떤 특질적 문제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개개인의 역량과 건강함은 미국사회가 우리보다 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적당한 예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가정일 뿐이지만, 웨인스타인 사건을 보면 한국에서 그런 폭로가 가능했을까 싶은 거다. 한국이었다면 아무리 스타 여배우였어도 그렇게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을 수 있다. 할리우드에선 웨인스타인이 분명 건재한 사람이지 않나. 개개인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미국 사회가 훨씬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목사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스스로 그 담론을 나눠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부조리는, 나의 경우 평신도이기 때문에 조사를 통해 알게 됐지만, 목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그들은 이것이 어느 교회들의 일인지도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기섭의 회개에 대해선 비기독교인들의 이해를 도울 설명이 필요해보인다.

"원죄에 대한 이야기다. 원죄라는 건 '이 세상은 내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을 피조물로 보지 않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생각이다. 기독교에 따르면 우리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동적 존재다. 이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기독 신앙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불편한 진실이고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다. 그것을 거부하게 되면서, 세상에 죄가 오고,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해쳐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다시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십자가에 못 박히며 승리했다. 기독교에서의 승리는 세상에서의 자잘한 승리가 아니라, 훨씬 거시적인 의미의 승리다. 내 힘으로 승리했을 때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내가 패배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때 승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 철학이 말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기섭의 회개는 기독교 교리에 충실한 의미에서 승리라고 볼 수 있나.

"기섭은 세상적으로 완전히 패배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승리는 그 때 보이기 시작한다. 기섭은 다시 이 세상에 나와 강요섭과 싸울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싸워서 뭐가 달라지나' 할 수 있지만, 사람은 달라진다. 앞서 기섭은 변호사를 만나고 방송사 PD를 만나는 등 세상의 방식으로 싸웠다. 하지만 기섭이 다시 싸움을 시작한다면, 그건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싸움일 것이다. 이건 절대 비겁한 결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섭은 또 질 수 있지만, 넘어지지는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선과 악을, 창조의 원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가치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판단을 해야 하고 내 행동에 대한 선택과 실행을 해야 한다. 단 우리가 구분을 하지 못한다는 점, 가치를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기독교인이 말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행동은 똑같은데 그게 무슨 차이냐'라고 할 수 있지만 신앙은 깊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 생각한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정의를 외치는 것과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해도 될까요?'라고 하나님에게 묻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 사이 크기의 차이가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강함'은 후자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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