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례]통신 기본료 폐지, 잘못 꿴 첫 단추 2017.06.09 16:59
통신 기본료 폐지가 새 정부 최대 현안이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기본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기본료 1만1천원만 낮춰도 국민들의 통신비가 크게 줄어드니 공약 때도 유권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20~30대 중에는 이 공약만으로도 당시 문 후보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최근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도 기본료 폐지는 반드시 이행돼야할 공약이라는 인식이 높다. 해당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기본료 폐지의 어려움을 토로하자 이례적으로 미래부 태도를 문제 삼으며 업무보고를 보이콧하는 지경까지 이를 정도였다. 결국 국정위는 10일까지 방안을 내 놓으라 최후통첩 한 상태다.

"(사업자 편만 들고)국가 기관이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미래부는 솔로몬의 지혜라도 꿔오고 싶을 판이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기본료 폐지를 강제할 수 없다는 미래부의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통신사를 대신해 서슬 퍼런 국정위의 칼날을 막겠다는 용기가 아니라 현행법상 민간기업인 통신업체에 기본료 폐지를 요구 할 수 없다는 국가 기관으로서의 판단인 것이다. 이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기본료 폐지의 위법성을 놓고 행정지도라도 강제성이 있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언급한 인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통신 산업을 키워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사업자들에 각종 기금으로 수조 원을 받아 나라 곳간을 채웠던 미래부다. 국가 기관이 맞느냐는 소리에 잠 못 이룰 미래부 공무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또 이해당사자인 통신업계 주장이지만 정부의 원칙 없는 시장 개입이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도 틀리지 않다. 국정위 논리라면 요즘 논란인 치킨 값은 물론 외국보다 비싼 커피 값, 규제산업인 기름 값도, 정작 공공부문인 전기 요금도 모두 물가 상승의 주범이고 민생 현안이니 정부가 나서 값을 내려야 한다.

국정위 압박에도 미래부와 이통 업계가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문제가 틀렸으니 답을 못 찾는 것이다.

사실 기본료 폐지는 공약 단계부터 잘못 꿴 첫 단추다. 당시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 정책위원회가 마련한 가계통신비 공약에는 기본료 폐지가 없었다. 강제할 근거가 없어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 것이 발표단계에서 갑자기 포함되면서 캠프 내부에서도 잡음이 일었고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정책위 내 우려대로 기본료 폐지는 이통 3사는 물론 알뜰폰 등 통신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공약이다.

일괄 인하든 일부 폐지든 이로 인해 이통 3사가 부담해야할 금액은 적게는 1조원대 많게는 7조원대다. 3사 연간 영업이익이 채 4조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사업의 존폐가 걸린 기본료 폐지를 정부 공약이라고 이행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알뜰폰 업체가 고사할 수 있다는 문제 역시 계산에 넣지 않았던 셈이다. 다만 이 경우 5세대통신(5G) 투자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은 내부에서 거론됐던 것으로 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5G에 대한 정부 직접 투자를 언급했던 이유다. 이는 통신 산업 국유화 등 논란이 커지자 돌연 "정부가 투자를 적극 유도하겠다는 뜻이었다"로 말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기본료 폐지는 대·중소 상생, 4차 산업혁명의 기틀이 될 5G 투자는 물론, 한미 FTA 상 국가가 통신 산업을 할 수 없다는 점 등 예상 가능한 문제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표만 의식해 급조된 포퓰리즘의 전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니 틀린 문제의 답을 찾겠다고 국정위와 미래부, 이통 업계가 머리를 싸매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출구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계 통신비 부담 얘기가 어제 오늘 나온 얘기는 아니니 현실적으로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기본료 폐지가 아니어도 취약계층 부담을 줄이거나 공공와이파이를 늘리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등 시장 경쟁을 통해 요금이 내려가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행히 국정위가 여러 이해관계자의 말을 충분히 수렴한 뒤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국회 소관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도 신중론을 얘기하고 있다. 현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미방위가 중재자로 나선다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겠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뼈아픈 수업료를 치른 국정 농단도 결국 법과 원칙을 무시한 무리한 국정운영이 단초가 됐다. 출범 한달을 맞은 새정부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높다. 과거 정부와 달리 잘못 꿴 단추가 있다면 욕 먹을 각오를 하고라도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분명 달라진 정부에 거는 기대다.

/박영례 정보미디어팀장 yo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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